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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엽 미국의 여류 소설가 ‘캐서린 앤 포터’는 “소설의 끝을 알지 못했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소설을 쓸 때는 늘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단락의 마지막 행부터 쓴다”라는 말을 남겼다. 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저자 마거릿 미첼은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어떻게 잡을지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마지막 장을 먼저 쓰면서 결말부터 시작해 거꾸로 장별로 하나씩 글을 써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라 해보았다. 내 마지막 문장은 이것. ‘무언가 느낀다는 것, 깨닫는 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자, 시작해볼까.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고통의 강도는 각자 다르고, 우리 삶은 온갖 역경과 어려움으로 가득하다. 행복한 일도 많지만 힘든 일, 슬픈 일도 많다. 내게도 행복한 일, 슬픈 일이 있어났다. 그것도 연달아. 행복한 일은, 약 2년 전 뮤지컬 맘마미아 페퍼(Pepper)역으로 캐스팅된 것. 참고로 내 인생 첫 배역이었다.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행복. 굳이 표현하자면 밥 먹을 때도 웃음 나고, 거울을 봐도 웃음 났다. 또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다.’ 이런 식의 문장이 어울리는 그런 행복감.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행복하다. 힘들고 슬펐던 일은, 뮤지컬 맘마미아 ‘Does your mother know(네 엄마는 알고 있니)’ 장면에서, 점프 후 잘못된 착지로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것. 생각하기도 싫다.
‘Does your mother know(네 엄마는 알고 있니) 프레스콜 영상은 -> https://youtu.be/y25QdRFg1fE
공연 3회차만에 하차했다. 그 기분이란. WHAT THE!!! 좋아하는 작품을 할 수 없는 아쉬움과 첫 배역에 대한 상실감도 컸지만, 과연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배우를 다시 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슬픔이자 의문이었다. 아무런 답도 찾을 수 없었고, 선택도 없었다. 십자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되었다. 분노(?)의 재활을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라면 걷는 법을 자연스레 배운다. 본능적으로. 하지만 난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 걷는 법부터 배워야했다. 아장아장. 아장아장. 하루 7-8시간씩 프로 선수들처럼 재활을 했다. 재활에 서서히 속도가 붙었고, 어느 덧 낮은 점프도 할 수 있었다.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흘러,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힘들었던 시기에, 다행히도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의 만남은 내게 큰 힘과 파이팅이었다. 그래도 무언가 허전했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이제 겨우 걸을 수 있는데,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란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질문과 '우린 언젠간 죽는다'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깨달았다. 바로 이 때부터, 난 변했다. 지인들이 병문안때 선물(?)로 주었던 책을 한권, 두 권 읽기 시작했다. 예술관련 책을 제외하면 일 년에 책 한권 읽지 않았던 터라, 처음에는 책 읽는 속도가 더뎠다. 하지만 무언가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책읽기에 속도가 붙었다. 첫 달은 3권, 그 다음 달은 7권, 10권, 15권. 한 달 동안 읽는 권수가 점점 많아졌다. 책을 읽을수록 처음에는 느낌표였던 것들이 물음표로 바뀌었다. 느낌표에서 물음표로.이렇게.
(질문이 많아지던 시기에, 내가 읽은 책들로 물음표를 만들어봤다. 아마도 2017년 말)
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심지어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이 순간도 변신중이다. 지금의 나는, 수많은 물음표가 원소처럼 내 몸 구석구석 박혀있고 쌓여있다. 앞으로 어떤 물음표가 내 몸에 올까? 그건 내 선택이고 운명이겠지. 그리고 그 선택과 운명에 따라 또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결국, '무언가 느낀다는 것, 깨닫는 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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