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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 - ⅹ ÷ 철학 = ?

ho작가 2018. 4. 20. 02:10



지바 마사야.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라고 한다. 나는 [공부의 철학]을 통해 저자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제목이 공부의 철학이라니. 이 남자, 자신감과 패기 좀 보소. 얼마나 자신있길래 제목을 ‘공부의 철학’이라고 했을까? 자, 생각해보자. 어느 한 명사 뒤에 철학이란 단어를 붙인다는 것. 쉬운 일일까. 직업이 바리스타라면 커피의 철학, 회사원이라면 회사원의 철학. 이런 식으로? 이렇게 구성된 단어의 무게가 가볍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도, 그 무거운 제목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다가, 심장 깊숙이 와 닿은 부분이 있었다. 아니, 뇌 깊숙이. 책을 내려놓고 그 부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언어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다. 이 힘을 의식해야 한다. 굳이, 억지로 언어에 관여해야 한다. 요컨대 언어 유희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중략) 깊게 공부한다는 것은 곧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작년 가을, 필라테스 전문가 과정을 공부할 때였다. 새로 접하는 단어들과 개념들이 많았다. 필라테스의 기본 원리인 호흡, 집중, 중심, 조절, 정확, 흐름과 해부학의 복잡한 용어까지. 특히 해부학 용어는, 필라테스를 공부하며 처음 접하는 단어와 처음 접하는 개념들이 많았다. 필라테스를 공부하며,  머리로 외우고 몸으로 익혔다. 단순히 외운다, 암기한다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필라테스 관련 책을 볼 때의 난, 필라테스에 대해 언어 유희적 인간이 된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난 암기를 했고, 현재의 난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된다. 의식적으로. 비슷한 말이지만 다르다. 완전 다르다.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된다는 건 그냥 공부하는 것과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또 재밌는 부분도 있었다. 광대가 아플 정도로 웃었고, 웃다가 책을 떨어트렸다. 그 부분은 바로 이것. ‘세상의 진리가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 ’최후의 공부‘.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할까?(중략)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절대 ’최후의 공부‘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근거‘를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다.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이 공부의 유한화다.’  왜 웃었을까? 요즘 내 생각이 이렇기 때문에. 예를 들면,  내 자신이 크게 변한 지난 일 년(그 변화가 궁금한 분은, 글 ‘?,물음표인간‘ 참조/ http://creatjun.tistory.com/6)동안, 한 달에 적게는 15권, 많게는 30권 정도의 책을 샀다. 개인적으로 사고 싶은 책과 독서 고수들에게 추천 받은 책, 또 서점에서 목차와 앞부분을 읽어보고 충동구매(?)한 책도 있었다. 그에 비해 독서량은 한 달에 10-15권정도, 어느 순간부터 책이 쌓였다. 책장을 다 채웠고, 책장 옆 벽을 따라 제목만 보이게 책을 가로로 쌓았다. 사실 처음엔 그 쌓아놓는 의식(?)을 즐겼다. 그 높이를 즐겼고 게다가 흐뭇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책이 많이 쌓여있음에도, 책을 계속 사고 샀다. 주체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욕심. 그때 문득 ’사고 싶은 책은 계속 생길 테고, 보지 못하는 책은 계속 못볼텐데’라고 생각했고, 결국 이 많은 책을 다 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는 세상 존재하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책쇼핑도 쇼핑이란 깨달음을 얻었다. 언젠가는 읽을 테니, 읽을 수도 있으니 일단 구입하자는 생각은 쇼핑과 뭐가 다른가? ‘집에 빨간 니트가 있지만, 이 니트는 집에 있는 것 과 조금 달라. 그리고 언젠가는 입을 거야. 그러니 사자.‘ 

저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욕심? 성장에 대한 의욕? 좋다. 하지만 공부도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면 어떨까. 결국 우리가 살아있고, 살아가야하는 곳은 책 속이 아니라, 인생이니까. 공부는 최선을 다하되 어느 정도는 포기하자. 포기라는 말이 싫다면 내려놓음이라도. 이 책을 읽고, 공부의 유한화를 알고 난 후, 한 달 책값이 줄었다. 

고마워요. 지바 마사야. 千葉 雅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책 읽으며, 밑 줄 친 문장 몇 개를 정리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다.


‘결단을 할 때는 그저 우연한 것, 우연히 만난 것 중에 뭐든 결정해도 좋다.’

‘어떤 결론이든 괜찮다. 대담하게 결단하자.’

‘어떤 결론을 임시 고정해도 비교는 계속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매일 정보 수집을 계속 해야 한다. 다른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정보를 검토하여 계속 축적한다.’


저자가 말하는 공부와 공부법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만약 공부가 아닌 다른 단어를 설명하는 거라면? 저 문장들이 인생에 대한 설명이라면? ‘인생, 결단을 할 때는 그저 우연한 것, 우연히 만난 것 중에 뭐든 결정해도 좋다.’  잘 어울리지 않는가? 다른 문장들도 잘 어울린다. 이 책을 읽고, 공부의 철학이 인생의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공부는 낯선 것,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것이고, 인생 또한 낯설고 새로우니깐. 인생이 공부인가, 공부가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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